전시 에세이《필립 파레노:보이스》by옆집미술
안녕하세요 옆미의 누군가입니다. 날이 좋아지니 삼청동, 한남 언저리에 사람들이 많이 붐비더라고요.
요새 좋은 전시가 많이 열려서 그런지, 또 봄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고 싶어 그런지 저 역시도 오랜만에 리움에 방문했답니다.
현재 리움 미술관에서는 동시대의 핫한 작가,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 진행되고 있어요. 이건 사담이지만, 요새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들의 전시가 개최되는 것이 참 신기하고도 뿌듯해요.
전시 제목은 ‘VOICES’로, 기계와 첨단 기술을 이용해 시간과 공간의 개념, 미술 작품의 개념, 그리고 관객의 위치까 지. 오늘날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개념들에 대한 재고를 끌어내는, 말 그대로 현대 미술을 집대성한 전시였어요.
개인적으로는 전시를 볼 때 의미를 찾기 위해, 혹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아니라서, 전시를 보는 내내 놀이동산을 산책하는 것처럼 닿는 시선마다 즐거움을 가지고 봤던 거 같네요. 물론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들도 너무 의미 있었지만, 작품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_M2, 1995~2023
전시장에 들어가면 우선 주황빛 석양이 비치는 듯해요. 유리창에 주황색 필름을 붙여 이를 의도했다는데, 실제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시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 훌륭한 장치였다고 생각해요. 설명에 따르면, 해 질 무렵의 지구, 즉 디스토피아적인 현재의 지구와는 다른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해요. 글로만 봤을 때는 전달되기 어려운 의도가 시각적으로 다가와 아주 좋았던 것 같네요.
또한 이 귀여운 눈사람들은 보자마자 과정 미술 process art를 생각하게 했어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다양 해지고 또 작품이 물질성을 가진 하나의 오브제가 아닌, 언제가 사라질 수 있는 아이디어 자체일 수도 있게 되면서 작품이 될 수 있는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졌죠. 그래서 과정 미술의 경우, 영원히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사라지는 물질을 이용해, 시간의 흐름에 형태가 변하는 과정 그 자체를 작품화합니다.
하나의 조각과 같은 눈사람들이 좌대 위가 아닌, 배수구 위에 놓인 모습도 참 현대 미술 같죠?
<내 방은 또 다른 어항>_M2 , 2022
전시 오픈 전부터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던 물고기들! 이 물고기들 덕분에 전시장을 현실이 아닌 특수한, 그리고 환상 속의 한 공간처럼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단순히 벽에 걸린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작가가 만든 미술 세계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요?
<여름 없는 한 해>_M2, 2024
이 작품을 볼 때, 한참을 앞에서 서성거린 기억이 납니다. Disklavier라는 자동 연주 피아노와 전자 센서를 연결해 서 연주자가 현장에서 연주하지 않아도, 원격으로 연주가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더라고요? 사실 이를 볼 때, 기술적인 장치에 대해 하나하나 신경 쓰기보다는 정말 심미적으로, 그냥 제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에 집중했던 거 같아요. 피아노 소리도 매우 아름다웠지만, 특히나 위에서 주황색 눈이 내리는데 그 눈들이 그랜드 피아노 뚜껑의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정말...장관이었답니다.
<귀머거리의 집>_블랙박스, 2021
스페인의 거장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과 그것이 걸려 있던 빌라의 내부 공간을 담은 영상 작업인데, 앉아서 한참을 관람했던 기억이 나네요. 보통 명작을 관람할 때 그것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도 실제로 봐야 그 감흥이 더욱 짙게 남는다고 하잖아요? 근데 이 영상의 경우에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아주 느리게 해서 관람자들이 빌라에 붙어 있던 고야의 그림을 면밀히 뜯어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더라고요. 장작불 소리도 더해지면서 어둡지만 따뜻한 대기 속, 천천히 빌라와 작품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 작업이었습니다.
<세상 밖 어디든>_M2 , 2000
제가 개인적으로 전시에서 꼭 보고 싶었던 안리!
이 캐릭터는 필립 파레노 본인이 만든 캐릭터가 아닌, 일본의 만화 회사에서 제작된 것을 파레노가 구매했다고 해요.
작가 본인이 창작하지 않은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업이라니… 원본성을 중요시했던 이전의 미술 작품에 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것이 행해지는 것이 바로 현대미술이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나 배두나 배우님의 음성과 함께하는 안리, 다들 가셔서 만나보세요!
<시계 태엽>_그라운드 갤러리, 2020
티노 세갈, <이렇게 장식하기 (쉬헤라자드 파레노) (보이스 버전)>_그 라운드 갤러리, 2024
파레노의 개인전이지만 동료 예술가와의 협업 작업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는데, 특히나 이 퍼포먼스가 정말 기억에 남았던 거 같아요. 작가가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티노 세갈에게 의뢰했다고 해요. 사실 처음에는 너무 놀랐다가 작품임을 깨달았는데,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움직임과 댄서분의 움직임이 조화롭게 융화되어 더욱 보는 재미가 있었던 거 같아요. 짧은 퍼포먼스가 끝나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시는 모습이 하나의 묘미이기도 했답니다.
<막(Membrane)>, 2024
리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아니쉬 카푸어의 설치 조각을 대신한 이 작품. 파레노의 전시의 인공두뇌, 즉 사령탑의 역할을 했다고 해요. 사실 전시를 보기 이전에 이 탑을 봤을 때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으나, 전시를 보고 난 이후에 오히려 탑의 기능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약간의 숭고함도 느껴지더라고요.
해당 작업을 통해 외부의 환경 정보가 데이터화해서 전시장 내부와도 연동이 되는데, 약간 ‘미술관은 살아있다(ㅎ)’처럼 전시 공간, 오브제,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생명체인 것 같은 느낌도 주는 거 같아요.
≪보이스≫에서 역시 우리의 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시적인,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것을 전반적으로 시각화하는 작가의 작업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 탑을 통해 전시 내용이 압축적으로 다가왔던 거 같네요.
전시를 아우르는 이 월텍스트를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읽게 되었어 요.
관람하며 계속해서 가졌던 의문의 실마리가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기분 좋게 전시의 여운 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약간의 시샘도 느 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미술작품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채 사람들의 감탄을 끌어내 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전시였습니다.
요새 느끼는 게, 다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이 미술을 정말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시즌인 거 같아요. 만개한 꽃들 과 함께한 따뜻한 봄 날씨에 다들 한 번쯤은 방문하셔서 현대 미술의 즐거움을 꼭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또 다른 전시 에세이도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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