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가 무슨 나무게요? 복숭아나무입니다. - 화방넷 커뮤니티

이 나무가 무슨 나무게요? 복숭아나무입니다.

honey1s**** 2026. 10. 31.

그런데 왜 화사한 꽃도, 탐스러운 복숭아도 그리지 않고 이렇게 그렸을까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소임을 다한 나무. 열매를 거둔 뒤 잎은 붉게 물들고, 이제 하나둘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어쩌면 그 시기가 엄마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77세가 되셔서야 다시 그림을 시작하셨어요.

마지막으로 엄마의 그림을 보았던 게 언제였을까요?
지금으로부터 46~47년 전, 제가 다섯 살, 여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세 살이었던 여동생은 참 울보였거든요. 자기 얼굴보다 더 큰 손거울로 얼굴을 보여주면 울음을 그치곤 했죠. 그런데 가끔 거울이 어디 갔는지 찾지 못할 때면 엄마는 이면지에, 때로는 화장지 위에 여동생의 얼굴을 연필이나 볼펜으로 재빨리 그려주셨습니다.
곱슬머리에 동그란 눈을 가진 여동생을 꼭 인물화책에 나오는 외국 아기처럼 똑같이 그리셨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그리셨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런 기억력은 아주 좋습니다. 요즘도 엄마는 저보고 "니는 참 별걸 다 기억한다." 하시거든요.)

 (이모, 외삼촌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저희 엄마는 원래 그림을 아주 잘 그리셨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흑백사진을 보면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복을 입은 엄마 앞에는 이젤이 세워져 있고, 그 위 스케치북에는 엄마가 그린 다비드 데생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1남 3녀를 모두 장성하게 키우시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꿈을 잊고 사셨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사셨죠.
이 그림 속 복숭아나무처럼요.
급식도 없었던 저희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도시락을 하루에 무려 7개씩 싸셨습니다.
오늘은 그림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난 TMI를 보태자면, 저희 엄마는 그림을 그리실 때도 전투적이십니다.
4남매 중 저는 엄마를 닮아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그린 그림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화부터 나더라고요. ㅎㅎ

그림을 다시 시작하신 엄마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엄마가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봄에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집 안에서 한 달 넘게 휠체어를 타셨거든요.
엄마는 "오래 살아도 정신이 똑바로 건강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엄마, 엄마는 그럴 거야.
그리고 엄마가 원하시는 그림을 오래오래 그리면서요."

🎨복숭아나무는 모작이 아닌 순수창작물이구요. 아래 클로버, 나비, 아이리스는 엄마께서 올해, 작년에 보테니컬아트 색연필화 책 보고 그리신 모작입니다.

아, 폰카메라로 엄마 그림을 찍으니 원래 엄마께서 쓰신 색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완성본 그림은 저희집 복합기로 스캔을 뜬 겁니다.  

덧. 올해 추석에 엄마에게 프리즈마 색연필을 선물해 드렸습니다. 그림 그리시라고 사드렸는데, 아까워서 못 쓰시겠다고 하시네요. 화방넷에서 사드린 지 한 달이나 됐는데 쓰시라고 사드린 색연필이 관상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보이시죠?

엄마 숙제 끄읕!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