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로그3기_3주차_책_두번째그림_작별하지않는다 - 화방넷 커뮤니티

드로잉로그3기_3주차_책_두번째그림_작별하지않는다

roughpen 2024. 12. 1.

얼마 전 내린 폭설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굉장한 습설에다가 말그대로 하룻밤만에 주변 모습을 바꿔버린 눈이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한강 작가의 소설이 유독 떠올랐습니다. 한강의 소설에는 눈을 고요하고 강인하게 묘사하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렸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4.3사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와 연결되는 후속작같은 작품입니다.

둘 다 아픈 한국현대사를 다루는데 여기에서 눈이, 아름다운 육각 결정의 눈송이가 축적되며 그 기억을 환기시키고 선명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소설의 화자가 꾼 잊혀지지않는 검은 나무 꿈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꿈에서 검은 나무들이 눈을 맞은 채 땅에 흩어져있는데 봉분들과 함께 바닷가에 묘지처럼 보입니다. 밀물에 뼈들이 떠내려갈까 두려운 화자는 괴로움 속에 꿈에서 깨고, 이를 제주에서 목수일을 하는 친구 인선과 이를 다큐로 재현해보고자 먹을 입힌 검은 통나무들을 준비하지요.

이 얼마나 강렬한 장면입니까. 검은 나무와 하얀 눈.

마치 쓰러져 죽은 사람들처럼, 누군지 알  수 없는 눈덮힌 얼굴들.

글로 마음에 이런 장면을 각인시키는 작가의 능력이 참 대단해보입니다.

부족하나마 제게 각인된 그 이미지를 상상해 표현해보았습니다.

재료는 '까렌다쉬 네오파스텔 48색'과 유화전용지 '파브리아노 테라'입니다.

오일파스텔이 유화와 거의 동일하게 사용가능해보여 선택했습니다.

다만, 유화용 페인팅오일을 쓰려고 했는데 시간 상 찰필로 블랜딩하며 작업했습니다. 

눈쌓인 바닷가를 밑그림으로 그리고,

오일파스텔로 색을 입혔는데, 깨끗하게 소복히 쌓인 눈을 표현하는 게 어렵더군요. 하지만 오일파스텔은 어설퍼도 용기를 주는 멋진 재료입니다. 화지를 적당히 밀도있게 채우기만해도 그럴 듯 해보이거든요.

그리고 완성. 페인팅오일을 써서 덧칠을 더했더라면 보다 유화같은 느낌이 날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늘 마감 임박하여 그림을 올리는 스릴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끝내고 보니 그래도 성취감이 드네요.

다음에도 계속 꾸준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를 믿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