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최진영 - 화방넷 커뮤니티

구의 증명-최진영

aihana 2024. 11. 25.

작은 구는 그새 더 작아져버렸다. 가만히 앉아서, 외로운 빛으로 구의 몸을 바라봤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된다.

구의 죽음을.

어차피 관심없지 않았는가.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몸을 땅에 묻을 수도 불에 태울 수도 없다.

구는 여기 내 눈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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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죽은 구는 꼭 술에 취해 곤히 잠든 사람 같았다. 나는 갈바닥에 앉아 죽은 구를 안고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바람에서 새 옷 냄새가 났다.

비가 올 것 같아.

비가 오면 어쩌지.

비가 오면 좋겠다.

아니야 비가 오면 안 되지.

깊은 밤 잠 못드는 몸처럼 이리저리 뒤척이던 걱정과 바람. 쇄골까지 내려온 구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니 푸석한 머리칼이 한 움큼 빠졌다.손에 쥔 그것을 가만히 보았다. 버릴 수 없어서, 돌돌 말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밤은 천천히 가고 비는 오지 않았다. 나는 울지 않았고 구는 숨 쉬지 않았다. 죽은 구를 안고 있었지만 그와 죽음이란 개념은 전혀 연결되지 않았고 같은 극을 띤 자석처럼 강렬하게 어긋났다. 모든 것은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서서히 굳어가는 구를 집까지 옮기고 그로부터 수십일이 지난 후에도 그랬다.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